역사의 쟁점 토론방

현안 역사 문제의 제시와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공간 입니다 : 의견제시는 memo 를 이용해 주세요


  김종욱(2014-06-09 18:42:32, Hit : 3091, Vote : 351
 http://www.hanhim.org
 한자는 은(殷)시대 한민족이 만들어 쓴 글

한자는 은(殷)시대 한민족이 만들어 쓴 글




한자는 은(殷)시대 한민족이 만들어 쓴 글  

   번호:66  글쓴이:  일월선인
다운로드:0  조회:0  날짜:2003/09/16 10:37    

..  



한-일 역사의 비밀을 캔다<4>

“한자는 은(殷)시대에 우리민족이 만들어 쓴 글”

92년, 일본 혼슈(本州)의 최북단에 자리잡고 있는 아오모리(靑森)에서 야구장 건설공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그 공사는 야구장을 건설하는 대신
4000년 전에 번영했던 사람들이 남긴 엄청난 유적(遺跡)을 되살리는 결과를 낳고 중단됐다.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자 일본 전국은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왜냐하면 그 유적에서 모든 사람들의 눈을 의심할 만치 놀라운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 그 유적을 산나이마루야마(山內丸山)유적(遺跡)이라고 부르는데,
이 유적은 1986년에 규슈(九州)의 사가현(佐賀縣)에서 발굴된 요시노가리(吉野里) 유적과 더불어 일본 전국을 들끓게 만들었다.

어림잡아 500명에서 1000명 정도의 인원이 생활했으리라고 보이는
약 38만㎡에 달하는 넓은 유적에서 사과상자 4만개 분량의 유물이 발굴됐다.
이렇듯 많은 유물을 남긴 산나이 마루야마 지역 사람들은 기원전 2000년 쯤에 돌연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그 문화도 그들을 따라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일본 학자들 가운데는 “큰 해랑(海浪)이 몰려와서 부락이 송두리째 쓸려가 버렸던게 아닐까”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화산폭발로 눈깜짝할 사이에 파묻힌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밖에도 “지진(地震)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한순간에 묻혀 버렸을 지도….”하는 사람,
“아니 그게 아니라 무서운 전염병이 번져 모두 죽었을 께야”,
또는 “외적(外敵)의 습격으로 주민전부가 몰살 됐을런지…”라는 등 갖가지 억측(臆測)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일본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으면서도 가장 있을 법한 중요한 원인은 벼농사 전래(傳來)이다.
식량문제 때문에 고민하던 그당시였던 만큼 벼농사 전래로 말미암아 동요가 일어났던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다.
벼농사(水稻)는 중국 남서부지방에서 약 7000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에는 산둥반도(山東半島)로부터 황해를 넘어 전래됐다.
옛 고구려 영역인 중국 동북부는 온도가 낮은 탓으로 벼농사는 불가능했으나
따뜻한 경기(京畿) 이남에는 급속도로 보급돼 갔다.


십제(十濟)가 백제(百濟)로

마한(馬韓)의 좁은 땅을 얻어서 십제(十濟)라고 불리던 나라가
급속한 속도로 성장해서 백제(百濟)라 칭하는 큰 나라가 되었는데
이처럼 마한이 전역을 집어삼키며 팽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벼농사의 보급 때문이었다.
백제왕들은 벼농사를 권장하기 위하여 일찍부터 저수지(貯水地)를 여러곳에 만들었을 뿐 아니라
태양신앙마저 버리고 비를 내리게 해주는 검은 구름을 상징하는 ‘곰(熊)’을 섬기기 시작했다.
‘곰(熊)’은 비를 내리게 하는 검은 구름을 뜻하는 ‘가마(黑)’가 ‘거마(黑)’를 거쳐 ‘고마(黑)’로 소리바꿈 된 다음,
받침화 현상으로 ‘곰(熊)’이 된 것이다.
이것이 짐승 이름인 ‘곰(熊)’으로 전용(轉用)되었다.

그들이 곰숭배사상에 흠뻑 빠졌던 사실을 대변하듯 백제가 팽창해 가면서 영역을 넓힌 지역에는
‘곰(熊)’이란 글자가 붙은 지명이 숫하다.
그들이 멸망해 가면서 도읍지(都邑地)로 쓰던 공주(公州)의 원래 이름 역시 곰나루(熊津)다.
사람들의 교류가 자유로웠던 그 시대니 만큼, 벼농사는 일본열도에도 곧 전달됐다.
극히 최근까지만 해도 일본 고고학자들은 도쿄(東京)지역까지 보급된 것은 약2300년 전쯤이라고 말하며,
그 시기를 ‘야요이시대(彌生時代)’가 시작된 때라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300년쯤 앞선 2600년쯤에 ‘야요이시대(彌生時代)’가 시작됐다고 학설을 고쳤다.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훨씬 앞선 3800년전쯤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약3000년 전 아오모리(靑森) 지방 승문유적(繩文遺跡)에서 입쌀 7알이 출토된 것이 그것을 입증해 준다.
3000년 전에 그곳에서 벼가 생산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 벼농사에 관한 정보가 아오모리(靑森) 지방에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아오모리(靑森) 지방으로부터 과히 멀지 않은 곳까지 벼농사가 보급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벼농사 소식이 전해지자 산나이마루야마 지역 사람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유혹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혼슈(本州)의 최북단인 추운 아오모리지방에서는 벼농사가 힘겹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들은
거기에 눌러앉아 추운지방에서도 키울 수 있는 개량종이 나오도록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참작할때 산나이마루야마 지역 사람들이 정든 그곳을 버리고
앞을 다투어 남쪽으로 이동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2만3000년전 중국정착

일본열도에서 승문시대라고 불리는 오랜 세월이 흐르고 있는 동안
흑룡강으로부터 요하(遼河)에 이르는 유역에 정착한 가라족(加羅族)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우선, 우리 민족이 중국대륙에 정착한 때는 언제쯤일까?

그것을 추산(推算)하자면 아나톨리아 지방부터 중국 동북부에 이르는 사이에 있는 험준한 산맥과 거리를 참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추산의 근거로 보리농사의 전파(傳播)속도가 흔히 거론된다.
보리재배 기술이 아나톨리아 지방으로부터 영국에 전달되는 데는 약6000년이 걸렸다고 구미(歐美)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아나톨리아 지방으로부터 영국쪽으로 가는 도중에는 험준한 산맥이 없을 뿐 아니라
거리도 중국 동북부에 이르는 사이보다 훨씬 가깝다.
그런 물리적 조건을 감안하면 아나톨리아 지방에 있던 우리의 먼 조상이
중국 동북부까지 많은 무리를 이끌고 이동하는데는 영국까지 이르는데 걸린 6000년 보다
약2배인 1만2000년이 걸렸다고 봐도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민족이 중국 동북부에 도달한 시기는 기원전 2만3000년 전쯤이리라는 계산이 나온다.

2만3000년 전쯤에 중국 동북부에 정착한 한족(桓族=韓族=加羅族)은
그 수가 급증하면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제각기 독립된 부족을 구성하더니
드디어는 구한(九桓)이라고 불리는 아홉부족이 됐다.
그러면서도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모두 태양을 조상으로 섬기는 신앙(信仰)에는 변함이 없었으며
그것을 구심(求心)으로 한데 뭉쳐 행동했다.
그들이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1만년 전쯤이었고 나라 이름은 한(桓)이었다.
중국 고대사에서는 우리를 동이(東夷), 즉 동쪽에 사는 오랑캐라고 부르고
그 부족이 아홉으로 갈려 있다고 해서 구이(九夷)라고도 했다.

한자(漢字)는 은(殷)나라 시대에 우리민족이 만들어쓰기 시작한 글자이다.
이것은 은(殷)나라 유허(遺墟)에서 발견된 갑골문자(甲骨文字)로 이미 밝혀진지 오래다.
그런 글자가 아직 없었을 때의 우리부족 이름이 우리 고유의 말이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자가 없었던 시절이었던 만큼 딱히 뭐라고 발음됐는지 지금으로는 알 수가 없고 후세의 중국인들은
견이(田犬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玄異)·풍이(風夷)·양이(陽夷)·우이(于夷)등의
아홉 오랑캐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예맥(濊貊)-숙신(肅愼) 따위와 같이 우리말의 뜻을 멋대로 해석했을 뿐 아니라
고의적으로 좋지 않은 뜻을 가진 한자를 적용해서 만든 예도 많다.
왜 중국 사람들이 고의로 좋지 않은 뜻을 가진 한자를 적용했을까?
고대 중국사람들은 기원전 2707년에 즉위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민족의 신시시대(神市時代)
제 14대 치우천황(蚩尤天皇) 때에 이르도록 많은 시달림을 받았기 때문에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서 ‘고대 중국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을 뜻하는가를 똑바고 알고 넘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중국 역사가 왕동령(王桐齡)이 그의 ‘중국민족사’에서 지적했듯이
지금으로부터 약4000년전까지 중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우리민족이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민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가운데는 발해(渤海)사람들처럼
‘중국민족’이란 이름속에 흡수된 수많은 가라족(加羅族)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고대 중국인은 대부분 가라족

그런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삼국유사(三國遺事)이다.
그 속에 있는 고조선(古朝鮮) 대목에 대략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위서(魏書)에 이르되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에 단군(檀君) 왕검(王儉)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개창(開創)하여 조선(朝鮮)이라 일컬으니 요(堯)와 동시(同時)라 했다.
왕검(王儉)이 나라를 세운 것은 당(唐)의 요(堯)가 즉위한 지 50년이 지난 때다”

사대주의(事大主義) 사상에 흠뻑 물든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의 이런 기록은
왕동령(王桐齡)이 갈파(喝破)한 “‘치우왕(蚩尤王)’이 다스리는 구려(九麗)가
지금으로부터 약4000년전까지 중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명백히 모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당(唐)나라 요왕(堯王)은 치우천왕(蚩尤天皇)보다 적어도 400년 뒤에 즉위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지금의 중국민족 가운데 많은 가라족(加羅族=枷倻族)이 섞여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중국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의 DNA를 비교조사하면 분명히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박병식(한-일어원 연구가)


-03.09.16 focus- (정리-일월선인)

2003-09-16 오전 12:00:01  






Name
Memo      


Password



공지   한단고기의 평가--마고사이트(추천 151번에서 펌) [2]  김종욱  2014/05/28 1757 284
공지   동북 공정은 사기다 --주은래 (1987명 조회 스팸리플로 다시 게재)  김종욱  2009/05/24 3758 638
공지   소위 지나가 자기네 역사라 하는 금(金)나라, 청(淸)나라 역사도 우리 역사다.(=역 동북공정)  김종욱  2008/04/25 4733 1055
공지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국립중앙박물관  김종욱  2007/02/28 4710 722
220   충효예 정신에 대한 옳바른 시각(국방일보 : 군에서 배우는 충효예 11-22회 분량)  김종욱 2014/06/30 3232 297
219   中華史觀’ 고구려 넘본다… 省마다 한국측 조직적 번역-대응 [우리의 바른 역사를 찾아서에서]  김종욱 2014/06/30 1459 321
  한자는 은(殷)시대 한민족이 만들어 쓴 글  김종욱 2014/06/09 3091 351
217   황당한 진실 (16) 한무제 의 전쟁 서곡 --구산  김종욱 2014/06/04 2875 325
216   [류근일칼럼] '분노'를 씻어내는 길  김종욱 2014/05/28 2622 362
215   마고문화로 다시찾는 동아시아 고대사와 한국역사 1 ---마고김황 혜숙  김종욱 2014/05/28 1655 326
214   7000만 동포가 뭉치는 길!! [12]  김종욱 2006/05/09 4602 797
213   포식자’ 중국을 기억하라-- 허동현 교수 [4]  김종욱 2006/04/02 5703 1012
212   한일 두 정상의 회담에 대한 소회 [1]  김종욱 2005/06/16 6575 1133
211   기자조선 위만조선 그리고 한사군의 실체  김종욱 2005/05/10 4716 783
210   어느 좌파 지식인의 '커밍아웃'  김종욱 2008/09/07 4608 649
209   역사적 순간-- 노·부시의 판가름 대면 [2]  김종욱 2005/06/07 4109 755
208   “일 역사왜곡의 정치적 의도에 말려들지 말라”  김종욱 2005/05/02 4749 639
207   황당한 진실 (31-1) 후세 사가들의 기자논쟁 2  구산 2005/04/16 4087 690
206   황당한 진실 (31) 후세 사가들의 기자논쟁 1  구산 2005/04/16 5125 1252
205   황당한 진실 (30 ) 조선의 정변과 기자족의 망명 1  구산 2005/04/09 4971 968

1 [2][3][4][5][6][7][8][9][10]..[12]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