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쟁점 토론방

현안 역사 문제의 제시와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공간 입니다 : 의견제시는 memo 를 이용해 주세요


  구산(2005-04-09 06:18:26, Hit : 4998, Vote : 972
 황당한 진실 (30 ) 조선의 정변과 기자족의 망명 1

구산 (2005-02-17 06:11:00, Hit : 345, Vote : 8)  



황당한 진실 (30) 조선의 정변과 기자족의 망명(1)


근래의 남북한 사학계에서는 기자조선의 존재에 대하여 한국의 역사에서는 지워버리기로 약
속이나 한것처럼 보입니다. 무려 천여년이나 존속되었던 중국도 무시못하는 역사를 한반도
로는 건너온 사실이 없기때문에 지워야 한다면 고조선의 역사를 아예 없에버리자는, 조상들
을 버리는 패륜아들이 되는것입니다.

밝혀보지도 않고 찾기가 어렵다고 없었던걸로 덮어두자는 수작들이 가당치나 한 예기입니까
중국에게 더 이상 무시당하는 바보가 되지 않으려거던 기자조선의 실체를 밝혀내야 합니다.
만약 한국에서 기자의 존재를 무시한다면 중국의 25사를 근본부터 수정해야되는 심각한 문
제가 발생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중국인들이 기록하였던 사서에는 평양을 기록 할때 빼놓지않고 강조 하는것은 기자조선과
한의 낙랑과 장수왕이 살았던 평양성이었고 조선의 사서에는 한결같이 선인왕검이 살았던
왕검성을 강조하였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만약 일부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기자가 동래할 당시 기자조선이 요서지방에 있었다
면 북쪽으로 갔다는 뜻으로 "북래"라고 해야 맞는것이지 어떻게 "동래"라고 할 수 가 있겠
습니까  중국인들을 동쪽과 북쪽도 구별못하는 바보로 안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오산입니다.

기자의 선조가 고조선을 떠나 은나라로 망명 하였던 사연을 <단군 세기>는 이렇게 기록하
고 있습니다. 기자가 본시 은 나라 사람이 아니고 조선사람 이라는 근거 사료입니다. 단군소
태 시대에 있었던 우현왕 색불루의 반란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기자족은 망명을 떠나야
했습니다.

二十一世 檀君 蘇 台 在位 五 十 二 年

甲辰元年(紀元997年)殷 主 小 乙 遣 使 入 貢 庚寅四十七年(1043)殷主武丁旣勝鬼方又引大軍
侵攻索度令支等國爲我大敗請和入貢壬辰四十九年(1045)蓋斯原褥薩高登潛師襲鬼方減之一群養
雲二國遣使朝貢於是 高登手握重兵經略西北地勢甚强盛

遣人請爲右賢王帝憚之不允屢請乃許號爲豆莫婁 乙未 五 十 二 年(1048) 右 賢 王 高 登 薨
基孫索弗婁襲爲右賢王帝巡狩國中南至海城大會父老祭天歌舞

仍召五加與之議傳位自謂老倦于勤欲委政於徐于餘 環薩水百里而封之命爲攝主號曰奇首右賢王聞
之遣人勸帝止之帝綜不聽 於是右賢王率左右及獵戶數千遂卽位于夫餘新宮帝不得已傳玉冊國寶廢
徐于餘爲庶人帝隱於阿斯達以終是歲伯夷叔齊亦以孤竹君之子遜國而逃居東海濱力田自給








구산 (2005-02-17 06:19:27)  

21세 단군 소태 재위 52년

갑 진 원년(B. C 1337) 은 나라 왕 소 을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경인 47년 은 나라
왕 무정 이 귀 방을 쳐 이기더니 또 대군을 이끌고 색도 영지 등의 나라를 침공하였으나 우
리에게 대패하여 화해를 청하며 조공을 바쳤다. 임진 49년 개 사원의 욕 살 고등이 몰래 군
사를 이끌고 귀 방을 습격하여 멸망시키니 일군 국과 양 운 국의 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
공을 바쳤다. 이 때에 고등이 많은 군대를 손에 넣고 서북의 땅을 공격하여 차지하게 되니,
그 세력이 매우 강하였다.

이에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와 우 현 왕으로 임명해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단 제는 이
를 위태롭게 여겨 허락 치 않으려 했는데 거듭하여 이를 청하매 허락하여 두 막 루 라 부르
도록 하였다. 을미 52년 우 현왕 고등이 죽으니 그의 손자 색 불 루 가 세습하여 우 현왕이
되었다. 단 제께서 나라안을 돌아보시다가 남쪽에 있는 해 성에 이르러 부로 들을 모두 불
러모아서 하늘에 제사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겼다.  



구산 (2005-02-17 06:23:20)  

그리고는 오가를 불러 이들과 더불어 제위를 물려줄 것을 의논하셨는데 스스로는 늙어서 제
위를 지키기 어렵다하시며 정치를 서 우여 에게 맞기고 싶어 하셨다. 이에 살수의 땅 백 리
를 둘러보시고 이를 그에게 봉 하 시사 명을 내려 섭 주로 하여 기수(奇 首)라 부르게 하였
다.

우 현왕은 이를 듣고 사람을 보내 단 제에게 권하여 이를 중지케 하였으나 단 제는 종래 이
를 듣지 않으셨다. 이에 우 현왕은 주변의 여러 사람들과 사 냥 족 수천을 이끌고 마침내
부여의 신 궁 에서 즉위하였다.

단 제도 어쩔 수 없이 옥 책 국보를 전하고 서 우 여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아사달에 은
퇴하여 마침내 붕어 하셨다. 이해에 백 이와 숙제도 역시 고 죽 군의 자손들로서 나라를 버
리고 동해의 해변가에 와서 살며 밭 갈기에 힘쓰며 혼자 살아갔다.  



구산 (2005-02-17 06:51:21)  

이렇게 쫓겨난 기자족은 좌원등지를 유랑 하다가 사냥꾼들을 규합하여 반격세력을 만들고
저항하여 마침내 복귀하는 절차를 밟게 되는데 가족중 일부가 은나라로 망명하는 과정은 생
략되어 있습니다.

번 한 세가 하

단군 색 불 루 는 처음 삼한을 합치더니 나라의 제도를 크게 개혁하였다. 은 나 라 왕 무정
은 사 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약속하였다. 이보다 앞서 서 우 여를 폐하여 서인을 삼았더니
서 우여는 몰래 좌 원에 돌아와 사냥꾼 무리 수 천인과 더불어 짜고 군대를 일으키니 개 천
령 이 듣고 즉각 토벌하려 했으나 패하여 싸움터에서 죽고 말았다.

단 제 께 서는 몸소 삼군을 이끌고 토벌하러 갔다. 이에 먼저 사람을 보내 서 우 여를 비
왕에 봉할 것을 약속하시며 다시 설득하니 서 우 여가 이에 따르므로 단 제께서는 서 우 여
를 번 한으로 삼으셨다. 4년 기 해에 진 조선은 천왕의 칙서를 전하였는데 가로 대 '그대들
삼한은 천 신을 위로 받들고 백성들도 이에 따르도록 교화하라'고 하다.  



구산 (2005-02-17 07:01:21)  

이때부터 백성들에게 예 의,누에치기, 베 짜기, 활쏘기, 글 등을 가르쳤으며, 백성들을 위하
여 금 팔 금법을 만들었으니, 남을 죽이면 같이 죽여서 다스리고,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
로 배 상 케 하고, 남의 것을 도둑질하면 남자는 신분을 무시해 버리고는 그 집의 노비가
되게 하고, 여자는 계집종이 되게 하며,

소 도를 훼손시키는 자는 가두어 두며, 예 의 를 잃은 자는 군에 복무하게 하고, 근면하게
노동하지 않는 자는 부역을 시키며, 음란한 행동을 하는 자는 태형으로 다스리고, 사기치는
자는 훈계방면하나 스스로 속죄하려 하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면하여 주지만 백성들이
오히려 수치스럽게 여겨서 결혼도 할 수 없었던 듯하다.

이로써 백성들은 끝내 도둑질 따위는 하지 않았으니 문을 닫거나 잠그는 일도 없었고 부녀
자들은 정숙하여 음란하지 않았다. 밭이나 들, 도읍지를 막론하고 음식을 바쳐 제사 올리니
어질고 경망 하는 풍속이 가득했다.

병 신년에 서 우 여가 죽고 정유년에 아 락이 즉위하더니, 그도 죽었다. 정축년에 솔 귀가
즉위하였고, 그가 죽으니 갑 자 년에 임 나가 즉위하였다. 신 미 년에 천왕의 조서로써 천
단을 동 교에 설치하고 삼신께 제사지내다. 무리들이 둥 그 레 모여 북 치며 노래하기를 다
음과 같다.

진정으로 천 단을 쌓고 삼신을 축 수 하세
황 운을 축 수 함이여 만 만세로다.
만인을 돌아봄이여 풍년을 즐거워 하 도다.  



구산 (2005-02-17 07:17:21)  

<번한세가>하에 기록된 기자의 8조금법과 기타 낙랑조선인에게 배풀었던 교육내용은 앞서
제시한 <한서>지리지의 내용과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단 이렇게 평화롭던 고장에 인심
이 흉하게 된것은 외부의 장사치들이 내왕하면서 도둑이 생겼기 때문이며 이로 말미암아 법
은 8조에서 60조로 늘어나게 됩니다. 원래 이 곳에는 대문이나 사립문도 없었다고 합니다.
殷道衰,箕子去之朝鮮,眞番朝鮮.樂浪朝鮮 其民以禮義,田蠶織作。樂浪朝鮮民犯禁八條:相
殺以當時償殺;相傷以谷償;相盜者男沒入?其家奴,女子?婢,欲自贖者,人五十萬。

雖免?民,欲猶羞之,嫁取無所?,是以其民終不相盜,無門戶之閉,婦人貞信不淫?。其田民?食
以? 豆,都邑頗放效吏及內郡賈人,往往以懷器食。郡初取吏於遼東,吏見民無閉臧,及賈人往
者,夜則?盜,俗稍益薄。今於犯禁浸多,至六十餘條  



구산 (2005-02-18 09:09:48)  

단군 소태에게 항명 하여 반란을 이르켰던 색불루는 일단 서 우여 사건을 마무리 하고 은
나라와의 간헐적인 전쟁을 계속하게 되는데 그는 성격이 공격적이여서 삼한으로 나누어 통
치하던 자치권을 한군대로 뫃아 국력을 결집시키고, 은 나라와의 전쟁을 하게 됩니다.

조선의 역사를 통하여 다른나라를 공격하여 땅을 빼앗고 자국민을 옮겨서 살게 했던 기록을
보았던 기억이 별로 없었던 우리들 입니다. 은 나라가 혁명할 당시 군대를 보내어 도와주었
던 조선도 형제국처럼 여기던 은 나라와 전쟁을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은 나라 말기 기
자가 조선으로 돌아 올때까지의 기록을 보시겠습니다.  



구산 (2005-02-18 09:20:59)  

22세 단군 색 불 루 재위 48년 <단군세기>

병신 원년(B C 1285) 단 제 명 하사 녹 산을 개축시키고 관제를 개정하였다. 가을 9월엔 친
히 장 당 경으로 행차하시어 묘를 세우고 고 등 왕을 제사지냈다. 11월 몸소 9한의 군사를
이끌고 여러 차례 싸워 은나라 서울을 격파하고 곧 화친하였으나 또 다시 크게 싸워 이를
쳐부쉈다.

이듬해 2월 이들을 추격하여 황하주변에서 승전의 축하를 받고 변 한의 백성들을 회 대의
땅으로 옮겨 그들로 하여금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게 하니, 나라의 위세가 떨쳐졌다. 신축
6년 신 지인 육우는 '천년 제 업의 땅이라 해도 대운이 이미 다했으며 영 고 탑은 왕기가
짙어 백 악 산을 오히려 능가하는 듯 합니다.

청컨대 성을 쌓고 이곳으로 도읍을 옮기 시옵소서'라고 상주하였으나 단 제께서는 이를 허
락하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신도에 이미 집이 있는데 다시 어째서 옮길 것인가?'라고 하셨
다. 을묘 20년 이 때에 남국이 매우 강성하여 고 죽 군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쫓고 남으로
이동하여 엄 독 골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으니 은나라 땅에 매우 가까웠다.

이에 여 파 달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 기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그곳의 유민과
서로 단결하여 나라를 세워 여(黎)라 칭하고 서융과 함께 은나라 제후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도록 하였으니, 남씨의 위세가 매우 성하여 황제의 교화는 멀리 항 산(恒 山)의 이남의 땅
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신미 36년 변방의 장수 신독이 병력을 믿고 난을 일으켰다. 이에 단 제가 한동안 영 고 탑
으로 피하니 많은 백성이 이에 따랐다. 계 미 48년 단 제 붕 어 하시니 태자 아 흘 이 즉위
하였다.  



구산 (2005-02-18 09:29:08)  

23세 단군 아 흘 재위 76년

갑 신 원년(B C 1237) 단 제의 숙부인 고 불가에게 명하여 낙랑 골을 통 치 하도록 하고,
웅 갈 손을 보내 남국의 왕과 함께 남쪽을 정벌한 군대가 은나라 땅에 여섯 읍을 설치하는
것을 살펴보게 하였는데, 은나라 사람들이 서로 싸우면서 결판을 보지 못하니 마침내 병력
을 진격시켜 공격하여 이를 쳐부수었다.

가을 7월 신독을 주 살하고 수도로 돌아온 뒤 포로들을 석방하도록 하였다. 을 유 2년 남국
의 임금 금 달이 청구의 임금, 구 려 의 임금과 주
개에서 회합하고 몽 고리의 병력을 합쳐 가는 곳마다 은나라의 성 책을 부수고 깊숙이 오지
로 들어가 회 대의 땅을 평정하더니 포고 씨를 엄 으로, 영고 씨를 서 땅에 방 고 씨를 회
땅에 각각 임명하니,

은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위세를 우러러보며 두려워하여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무 자 5년
이 한 및 오가를 불러 영고 탑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의논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하였다. 기
해 76년 단 제 붕어 하시고 태자 연 나가 즉위하였다.  



구산 (2005-02-18 09:38:10)  

24세 단군 연나 재위 11년

경 자 원년(B C 1161) 황 숙고 불가를 섭 정으로 삼다. 신축 2년 여러 한들은 조서를 받들
고 소 도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지냈으며, 나라에 큰일이나 이변이 있으면 전적으로 여기
에 기도하여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았다. 경술 11년 단 제 붕 어 하시고 태자 솔 나가 즉위
하였다.

25세 단군 솔 나 재위 88년

신해 원년(B C 1150) 정해 37년 기자(箕 子) 서화(西 華)에 옮겨가 있으면서 인사를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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