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쟁점 토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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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산(2005-04-16 11:52:31, Hit : 3865, Vote : 1243
 황당한 진실 (31) 후세 사가들의 기자논쟁 1

구산 (2005-02-21 12:21:33, Hit : 284, Vote : 9)  



  황당한 진실 (31) 후세 사가들의 기자논쟁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천년 전에 있었던 은나라의 태 사였던 기자의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기 산(箕 山)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 올라가서 기자의 묘는 찾지 못하
고 허 유(許由)의 묘 만 발견하고 돌아 왔다고 하였습니다. 기자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
기에 천년전의 영향력이 사마천을 현장까지 출동하게 하여 진실여부를 확인하게 하였을까
요.

그리고 그는 기자의 흔적이 완전히 중국에서는 살아진 것을 확인하고 조선인으로 인정하여
사기의 세가나 열전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리고도 미련이남아  송 미 자 세가에 언 저서
기자에 대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기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록을 남겼습니다.

<<사기>>권 130 태 사공 자서
" 아 깝 도다 기자여!  아 깝 도다 기자여!  바른말이 체납되지 않더니, 마침내 미치광이로
가장하여 노예가 되었다....... 미 자가 책봉될 때,  태 사 기자에게 정치에 관하여 질문하였던
일을 찬미하여 "송 세가 " 제 8을 지었다. 고 하였습니다. 기자가 남긴 일은 크게 두 가지입
니다.

그 하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법을 집행하는 임금자신이 지켜야 하는 자연의 가르침과
요구입니다. 즉 하늘의 요구에 순응하는 자세와 그 하늘의 요구를 알아낼 수 있는 여러 가
지 방법들입니다. 이것이 큰 법 즉 "홍 범 구주" 일 것이고, 두 번째는 조선의 백성들에게
가르쳐준 여덟 가지의 기본 행동법규입니다. 이것이 8조 금법입니다.  






구산 (2005-02-21 12:28:25)  

이렇게 큰 두 가지의 틀을 마련한 기자는 이미 은나라의 존경받는 성인이었음에도 불행은
그를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은이 망한 뒤 주 무왕과의 관계며 벼슬의 유혹을 뿌리치고 돌아
갔던 조선의 어정쩡한 대접 때문에 그는 8개년을 고 죽 국 이 있던 요 서 지방을 방황하다
가 장도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외부와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말많은 세상이 싫었으면
섬에 들어가 있으면서 농사일에만 전염하였을까요 이러한 본심을 모르고 그 후손들 마 져
진실을 오해하여 혈연관계마저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황망 스럽기 짝이
없는 일 이지만 그들만을 나무랄 수 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기자의 묘가 어디에 있다고 하더라는, 근거가 에매한 후문이 사마천 때까지
이르자 <사기>를 쓰던 사마천은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현장까지 출동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양 나라의 두 예가 주석으로 주장하였던 하남의 몽 성 근처에서는 이렇다
할 유물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이 형구 교수의 고고학적인 증언도 있었습니다. 후대에 여
기저기 흩어져 있던 풍문들이 몇 군데 기록으로 남아 사실을 확인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습
니다.  



구산 (2005-02-21 12:36:18)  

이에 우리 후학들은 몇 가지 기준을 설정하고 기자의 진실을 확인하여야 될 줄 압니다.

* 기자가 동쪽 조선으로 떠난 뒤 소식을 끊었다는 기록을 믿는다면, 중국 내에서의 기자 묘
에 대한 유적 설을 믿어서는 안됩니다. 왜 기자가 수유(須臾)로 들어가 외부와의 소식을 끊
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는지를 새겨봐야 합니다.

그리고 동쪽조선을 한반도로 단정짓는 미숙한 견해를 버려야 합니다. 수유가 중국 땅에 있
다는 설은 기자와는 무관한 모두 가짜입니다. 기자는 이미 중국 땅을 떠났다는 기록을 믿어
야 됩니다. 그러니까 기자가 들어간 수유는 조선입니다.

** 한반도 평양에 기자가 들어온 사실을 확인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기자가 들어간 평양과
는 관계가 없는 가짜 평양이란 사실을 알고 진짜평양을 찾아 야 합니다. 기자가 들어간 평
양이 아니라면 위만의 왕 험 성이 될 수 없고, 또한 낙랑 군이 될 수 없습니다.

기자의 조선입국을 거부하면서 낙랑군의 위치를 인정하는 것은 학자들의 양심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낙랑조선(기 자 조 선 이 아님) 과 위만의 왕 험 성과 한의 낙랑 군은 따로
따로 나뉘어 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구산 (2005-02-21 12:45:45)  

*** 이형구 교수의 고고학적인 증언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서> 지 리 지의 한사군
설을 참고하여 위치를 추적하면 찾을 수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발해내륙의 윤 몰 진상을
밝혀야 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형구 교수에게 발해내륙의 윤 몰 설을 연구하길 권합니
다.

**** <한단고기>나 <규 원 사화>등의 민족사서를 강력하게 주장하시는 신봉자들께서는
기자가 활동하였던 낙랑조선과 기자의 실존 설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만약 기자의 실존
설을 부정한다면 <한단고기>나 <규 원 사화>의 생명도 잃습니다.

***** 만약 기자가 중국인이었다면 오늘날의 공자는 중국의 성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자는 공자가 존경하는 큰 성인이었습니다. 그릇이 큰 사람만이 현자를 알아 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성인의 본성은 하찮은 부귀영화나 생사 등의 문제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지금 에 와서 그를 비판하고자 하는 학자들이 계신다면 오염된 판단력으로 그를 평가하는
누를 범하지 말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구산 (2005-02-21 21:51:51)  

사마천이 기산에 올랐었다는 <이제열전>기록과 <태사공 자서>원문을 올립니다. 참고하시
기 바랍니다. 기산이라는 이름 때문에 기자의 응용은 조금 과장된 감이 있습니다. 원래 산에
오른 목적은 허유같은 특별한 군자들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 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此何以稱焉??太史公曰:余登箕山,?其上蓋有許由□雲。孔子序列古之仁聖賢人,如吳太伯?
伯夷之倫詳矣。余以所聞由?光?義至高,?其文辭不少?見,何哉? 注?索隱詹頃公也]。<夷齊列
傳>

[嗟箕子乎!嗟箕子乎!正言不用,乃反?奴。武庚?死,周封微子。襄公傷於泓,?君子孰稱。景
公謙德,熒惑退行。剔成暴虐,?宋乃滅亡。喜微子問太師,作宋世家第八]。<太師公自敍傳>  



구산 (2005-02-22 09:36:38)  

기산(箕山)에대한 위치 고증입니다.
<사기>권 61 (백이열전) 사기고증 하책 1287쪽
주석 : 고증.... 기산은 오늘날 하남성 동봉현 동남쪽에 있다.

<수경주> 기산 영수조
남쪽으로 기산이 있고 산 정상에는 허유총이있다. 요임금이 봉을 받은곳이다. 옛날에 태사공
왈 내가 기산에 올라갔는데 그 산위에는 허유총이 있었다. 산 아래는 견우 유적이 있다. [수
경주 권 22 영수조] 사고전서. 573책 332쪽

이 자료는 다물회에서 발행한 <다물총서>제 3집470쪽 에서 참고하였습니다. 다물회에서는
다물지 창간 10주년 기념 특집으로 기자조선을 집중 조명하여 <기자조선 있었나?>라는 귀
중한 자료를 발간 하였습니다. 회원 59명의 출연금으로 만들어진 이 책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구산 (2005-02-22 12:07:11)  

위에서 소개 드린 <기자조선 있었나?> 라는 책에는 놀랄 만한 자료들을 망라하여 기자를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기자에 대한 사실만 확실히 밝혀진다면 고조선 의 역사는
그 핵이 밝혀진다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무려 470쪽에 달하는 내용을 분석하여 보고 드리는 것은 필자의 힘에 버거운 일이므로 어떠
한 자료들이 수집되어 제시되고 있는지 구성내용만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순번 제목 소속 발표자
1 기자, 고조선을 말하다 한국역사문화연구소장 오 정 윤
2 기자동래설은 날조였다. 정 인 보
3 난 하 유역의 조선(기자조선) 윤 내 현
4 기자조선의 위치 김 득 항
5 석주 이 상 용 선생의 역사관 이 유 립
6 기 자 조 선 한 순 근
7 기 자 고 천 관 우
8 기자신고 윤 내 현
9 대 능 하 유역의 은 말. 주 초청동기 문화 및 기자조선 이 형 구
10 기자조선은 시대와 司 武 輩의 誣 作 (사 무 배의 무 작) 박 형 표
11 소위 한 씨 조선 설에 대하여 이 유 립
12 환 작(幻 作)된 기자조선의 역사적 정체를 해부한다. 이 유 립  



구산 (2005-02-22 12:12:59)  

이상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논술들은 모두가 타당성이 있는 주장들입니다. 그러나 결정적
인 핵심을 밝히지 못하는 것은 평양의 위치가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엉터리장소를
선정해놓고 거기에 없었던 사실을 맞추려고 하니 잘 안 맞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
게 바보짓들을 해놓고 죄 없는 조상들만 있었니, 없었니 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불효입니
다.

연구논문 중에 기명이 뚜 렸 한 제기로 보이는 청동기의 내용을 분석한 이 형구 교수의 주
장이 은나라가 망한후 주 나라 초에 해당된다고 하는 것은 기자가 요서 지방으로 들어 와 8
년간을 유랑할 때이고 주 말경 시대의 제품이 발견된 연 태 시 근 역은 그들이 장도로(수
유)로 들어와 살던 시대로서 그 세력이 번 조선왕이 될 수 있을 만큼 강할 때였습니다.  



구산 (2005-02-22 12:20:07)  

땅이 좁은 섬의 약점은 죽은사람의 장지 문제입니다. 그래서 섬 지방에서는 주로 초분들이
많이 발 전 되어 있습니다. 시신을 풀로 덮어 가매장하였다가 살이 다 썩고 나면 뼈만 골라
합장하는 풍습을 말합니다. 연 태는 장도와 아주 긴밀한 근접지역입니다. 등 주. 내주 연 태
지역 어느 곳인가는 장도의 조선족들이 합장된 떼 무덤 지역이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장도 내에서는 대흑산도에서 많은 유골이 발굴되어 장도 역사박물관 부설 대흑산도 별관 이
2002년도에 개설되어 있습니다. 같은 권 역에 있었던 고구려도 외적에게 왕의 시신을 탈취
당하여 온갖 수모를 겪고 난 후에야 집안이라는 후방지대의 안전한 공동묘역을 마련하였던
것으로 봅니
다.  



구산 (2005-02-23 10:02:09)  

다물회가 발간한 <기자조선 있었는가?>라는 책의 발간목적은 가능하다면 기자의 흔적을 조
선사에서 털어내자고 하는데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심증이 듭니다. 하지만 필자는 그에 반
대하는 반론을 제시하였습니다. <한단고기>를 출현시킨 이유립선생이 기자의 존재를 부정
하는걸 보고 참으로 착잡한 심정입니다.

책속에 담겨있는 내용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그 책의진서여부를 논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일부 유학자들이 중국에 사대하기위하여 기자를 이용하였다는 억설에는 말문이 막힐 뿐입니
다. 더구나 현재의 책임있는 학자들 조차 기자설을 한나라의 조작으로 인정 한다면 중국과
한반도사이에서 실종된 고조선은 어디에서 찾아야 될까요?  



구산 (2005-02-23 10:09:45)  

송 호 정교수의 기 자 조선 에대한 견해를 보시겠습니다.
현재의 실재 적인 한국고대사의 실세 격인 송 호 정 교수는 기자조선을 어떠한 관점으로 보
고 후학들에게 지도하고 있을까요. 그는 기자설화가 <상서대전>. <사기>. <한서>등에 비
슷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면 왜 기원전 3세기이전에 저술된 <논어>나 죽서
기년>에 보이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 했습니다.

고로 '기자가 조선에 왔다는 전설은 실제사실이 아니라 기원전3~2세기 무렵에 한나라사람들
이 꾸며낸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157~158쪽)

그의 저서 <만들어진 신화>에 서 옮겨봅니다.

*** [기자조선은 실재했는가] 라는 제 하에 달린 부제 " 한국사는 기자조선을 어떻게 수용
할 것인가"라는 결론 부분입니다. (164쪽~165쪽)  



구산 (2005-02-23 10:13:37)  

기자동래설 자체는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수백 년 동안 우리조상들이 사실로 믿어왔다는 점
에서 적잖은 의미가 있다. 조선후기의 토지제도 모순의 개혁방안을 강구하던 일부 실학자들
은 농민의 토지를 균등하게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주장의 역사적 근거를 정전 제에서 찾기
도 했다. 그러나 그 정전제의 토지를 구획했던 흔적이라는 것은 고구려 수도인 장안성의 방
리(坊 里)를 구획했던 흔적일 가능성이 크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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