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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욱(2014-05-27 17:59:32, Hit : 1774, Vote :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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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우리는 과연 아리랑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박 갑 수(인터넷 민족 신문에서 펌)

특별기고-우리는 과연 아리랑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박 갑 수(인터넷 민족 신문에서 펌)


  입력시간 : 2005. 01.01. 00:00


1950년대 아리랑 잡지의 표지


특별기고-우리는 과연 아리랑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아리랑의 기원

박 갑 수



최근에 들어 T.V나 신문에서 아리랑에 대해 자주 보도하고 있다.

한동안 잠재되었던 민족정감이 서서히 나타나는 건지 아니면 한시대 복고풍의 유행인지 속단할 수는 없으나 전통민요가 새롭게 조명되고 재음미되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아리랑의 기원은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민요는 한민족의 핏줄과 가슴속에 여울져 가는 노래임이 확실시되며 다음 몇가지 사례만 들어 보아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 연변자치주의 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이야기이다.

「일본군 토벌대의 산길 안내역을 맡은 조선인 할아버지가 산모퉁이와 등성을 지나며 아리랑을 불렀다. 헛수고만 하던 토벌대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할아버지를 사살하였고 동시에 숲속의 광복군 총구에서도 불을 뿜었다.」

얼마 전 중앙일보기자가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귀국을 포기하고 필리핀 현지에 남아 버린 한 할머니를 찾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우린 아리랑을 부르며 참고 살았지. 그놈들이 괴롭히고 욕되게 할 때는 나지막하게 불렀었지 .......」

또 한가지 실화가 있다.

일본 패망직후 일본의 암흑가를 상당수의 한인들이 지배할 때이다. 야쿠자 조폭의 일원인 교포청년이 라이벌 조직의 간부를 테러하기 위해 숨어서 엿보고 있었다. 드디어 결행순간이 되어 접근하고 있었는데, 마침 라디오에서는 아리랑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생사가 달린 줄을 모르는 상대측 간부는 벤취에서 어깨춤을 추며 손으로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다.

「당신 분명 조선인이지. 몸짓과 장단 맞추는 게 일인이 아니다. 그냥 돌아가면 내가 당하지만 그냥 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아리랑에 관련된 이야기는 적지 않다. 그러면 왜 이 노래가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고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리랑의 선율과 장단이 인간이 갖고 있는 이중성, 양면성을 동시에 수용해 내는 가장 인간적인 노래이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음악이 잠재의식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리랑이 갖는 양면성의 조화는 여타 노래가 도저히 따라 올 수 없을 정도로 절묘하다고 할 수 있다. 결코 애절하기 만한 노래가 아니다.

아리랑의 음조와 선율에서는 밝음과 어두움, 경쾌함에 애절함, 신명과 설움, 흥과 한이 동시에 한 덩어리로 뭉쳐 멋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그 가사는 저항과 체념, 혁명과 순종, 슬픔의 해학적 처리 등이 잘 나타나고 있다. 마치 맵고도 단맛 나는 고추장, 여러 가지 맛을 동시에 조화시켜내는 김치처럼 아리랑은 양면성을 조화시켜 내는 데 참 맛이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아리랑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라도 부르기 좋고 감정의 불균형상태를 잘 조절시켜 줄 수 있기에 정신위생상으로도 매우 좋은 음악치료 효과를 가져다 준다. 미쳐버리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런 경우에는 아리랑이 마음을 다스려주는 하나의 특효약이 될 것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50여종의 아리랑 중에서 우리들이 흔히 부르는 아리랑은 서울․경기지역에서 전래되어 온 본조 아리랑이다. 이 노래는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각지방에서 교대로 올라온 부역꾼들이 피로를 풀고자 한 연회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돌아가며 고향 땅의 노래를 선보일 때 이 부역꾼들을 통해 전국에 확산된 것이다.

또 1926년 이 땅에서 최초의 영화로 나운규의 아리랑이 상영되자 방방곡곡에까지 보급되었고, 여기에 일재의 교묘한 동화정책의 하나로 조․일간의 민요를 상통시키게 함으로써 더욱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아리랑에 관한 기원에 대해서는 20여종의 설이 있다. 낙랑고개(자비령)가 기원이라는 이병도박사의 설도 있고, 부역을 싫어해서 我耳聾(내귀가 먹어)하며 현실 도피를 꾀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가장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설은 심재덕교수의 메아리설이다. 이 설은 音韻과 민속지리 이론을 바탕으로 해서 제기된 것으로 여타 기원설에 비해 신빙성이 높다.

이 메아리설을 요약하면 첫째, 다양한 형태의 아리랑의 산악지방에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다. 태백산맥이 중심이 되고 이 지역의 아리랑이 가장 古形에 가깝다.

둘째, 춘천, 정선지방의 나이든 노인들 간에는 아리랑대신 메나리(메아리의 변형)라고 해야 아리랑을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셋째, 아리랑의 가사에는 산신에 대한 신앙과 밀접한 요소들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상여꾼 소리에 ‘가자 가자 저산으로 가자 단군할아비 계신곳으로 가자’하는 가사도 있고, ‘어허 아리랑 달구야’하며 부르는 묘터의 달구질 노래도 있다. 또 홍역을 쫓기 위해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아리랑부적도 발견되고 있다.

넷째, 메아리의 어원은 산울림, 즉 아리는 울림을 뜻한다. 쓰리는 아픔이 직접적이라면 아리는 아픔은 반복적 파동(Vibration)을 일으킨다. 고대 우리조상들은 산신에 대한 호소, 기원의 대답이 메아리로 들려오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메아리는 곧 신의소리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 옛 조상들은 단군신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이 인간을 위해 활동하다가 마지막에는 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단군은 오랜 기간의 재위를 마치고는 구월산에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우리조상들은 산악을 신성시하였고, 그 안에 있다고 생각되는 산신을 숭배하였다. 묘를 쓸 때 산신제를 지내는 것은 물론 천재지변이 있거나 전쟁 직전에도 산신제를 지냈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명산대찰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桓雄과 그 지방의 산신을 모시는 山堂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불교, 도교등 외래의 종교들이 들어오면서 桓雄과 산신은 중앙의 자리(대웅전)에서 쫓겨 옆귀퉁이에 있는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으로 물러나게 된다.

바로 얼마전 정선에 인접한 아우라지 강 옆의 옥봉산 기슭에서 여전히 산신을 중앙의 집에, 부처를 좌측 집에다 배치한 기도처가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거금 천년이상을 버티어 온 오기와 끈기가 놀랍기만 하다.

앞서 아리랑의 가사에 대해 약간 이야기하였는데,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가사의 解釋에서 일본학자들의 先行硏究가 우리에게는 바람직하지 못하는 점이다. 한일합방 이후 그들은 일본정부의 사주를 받아 우리 아리랑의 가사에서 민족성과 신앙적 성격을 제거시키고, 애정의 노래로만 여기도록 해석하였으나 아리랑의 음조와 선율에 숨어 있는 민족정감과 저항의식을 변화시킬래야 시킬 수가 없었다.

아직 자신하기에는 이르지만 아리랑 전문가들과 논의한 바로는 아리랑의 가사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가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해석: 「산신을 향해 호소하는 소리와

메아리 答音이 神人合一의 음악이

되어 계곡을 울린다.

신을 찾는 소리는 우리가 사는

이승과 신이 사는 저승 중간에

있는 고개를 넘어간다.

우리들의 부름과 호소를 들어 주지않는

신은 결코 우리를 떠나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아리랑은 신에 대한 기원을 담은 메아리로부터 노래화 된 것으로 보여진다. 고대의 산신사상을 열등한 샤마니즘으로만 볼 수 없는 게 그리스의 신들이 올림푸스산에 있었고, 기독교의 여호와도 처음에는 사막, 초원지대에서 경외의 대상이 되었던 ‘화산의 신’(에호바르→여호와)을 의미했었다. 자연과의 합일을 희구하는 고대의 산악신앙을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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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0.24 KOPAS 학술회의 >


역사심리 측면에서 본 아리랑의 각성 효과

- 박갑수

(ar0418@freechal.com)

아리랑은 한민족의 정서를 대변해 주는 대표적 민요이고,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불려지며, 또한 적절하게 변형되어 해외에서도 한국인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서나 이 노래가 불려지고 있다. 이 사실은 아리랑이 우리 민족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반증한다.


이와 같은 아리랑과 민족사와의 관계와 배후를 밝히게 되면, 바로 민족사의 이면과 민족정서의 내면을 알아낼 수 있기에 아리랑에 대한 탐구는 조상의 뿌리를 찾는 만큼이나 더욱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한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현 아리랑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 기본 가정을 먼저 열거한 후 이를 토대로 역사심리학적인 결론을 내리기로 한다.


첫째, 아리랑에 대한 최초 기록이나 언급은 근세사 100∼200년 사이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극심한 혼란기에 나타났었다. 1828년 아리랑의 미국 악보발견, 1896년 H.B Hulbert 선교사 기록, 대정(大正)14년(1925) 해동죽지에서 30년 전 아리랑타령이 전국에 확산되었다는 기록 등이 있다.


둘째, 전반적으로 아리랑 가사의 대부분이 이별의 정한을 표출하고 있다. 대중가요에 나타나는 어휘의 빈도에서 75%가 이탈애수에 기인하고 있듯이 아리랑은 거의 이별의 애환을 담고 있다.(「한국인의 정서구조」 이규태, 1994년)


셋째, 아리랑의 가사나 곡조는 활동하는 시공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산악지방과 중부지방에는 육지 노동에 적합하게, 해안가 지방에는 해상 노동에 적합하게 변형된다. 모심기 노래, 달구질 노래 등 행동유형에 따라 다르게 불려지고 있다.


넷째, 애조를 띠면서도 동시에 희락적인 신명이 나타나고, 애환을 해학적, 낙천적으로 전환시키는 절묘한 전치(displacement)작용이 있다. 이 노래의 건전한 승화(sublimation) 효과도 결코 작지 않으며 아울러, 노래에 스며 있는 저항성은 대리형성(Substitution)을 통해 충동이나 욕구를 조절한다.

다섯째, 갈등해소에 유익한 통일성을 부여한다. 아무리 남남이라도 한국인은 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에는 단합이 잘되고, 죽음에 맞설 정도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상징을 통해 일체화가 이루어지는 합일화(incorporation)기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상의 다섯 가지 가정을 이용해 아리랑의 과거사와 무의식적 원형으로서 핵심정서를 다음과 같이 유추하고자 한다.


①근세사의 서세동점(西勢東漸)시기, 서구 열강들이 산업혁명이후 자원과 식민지 획득 쟁탈전을 벌리면서 제국주의 확산과 세계 신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교통수단, 에너지와 무기 현대화에 뒤진 조선과 대한제국은 서구열강과 일본의 협공으로 극심한 분쟁, 혼란과 지역이동 등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이탈하고, 낯익은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사례들이 대폭 증가하였을 것이다.


②이에 따라 생존을 위해 실향피난민으로서 국가체제에 대한 의존 보다는 신앙에 의존하며 절박한 현실적 이별의 아픔과 미지에의 희망을 동시에 갖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③이동지역이 다르더라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심리적 불안감, 부담감, 이별의 아픔은 거의 같은 유형에 속하기 때문에 아리랑이 주는 정감은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많은 민요 중에도 아리랑이 더욱 불려지게 되었을 것이다.


④자발적 보다는 어쩔 수 없이 타율적으로 헤어지며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 되었다면 다시 모이며 부르는 노래도 될 수 있다. 결자해지로서 이 노래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리랑이 폭발적으로 유행했다면 분명 그 당시의 시대정신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⑤아울러 이 노래는 서구 열강의 조선 압박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고 있으며 한자문화권에서 배신하여 열강의 주구로 전락한 일본이 강제마취에 가까울 정도로 왜곡시킨 역사의 흔적과 기억을 되찾는데 약리 작용할 각성제로도 효과를 나타내 줄 것이다.


이러한 추론을 감안할 때 아리랑은 실향피난민 정서를 내포하면서도 이별 현실을 극복코자하는 희망의지를 갖고 있으며 앞으로 발전적으로 아리랑의 심리적 효과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리랑의 예술성을 적극 발굴하여 각종 의식, 행사의 성격과 분위기에 따라 아리랑을 적절하고도 다양하게 편곡하여야 한다. 만약 현실적으로 상업성에 우선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아리랑에 접근하려는 일반대중의 첫걸음을 외면하게 하는 사례가 있다면 이는 반민족 행위와 같다고 하겠다.

따라서 한민족의 심리에 미치는 아리랑의 음악성을 충분히 활용하여, 과거 외세가 할퀴고 마취시킨 민족혼과 역사정신을 되찾고 심리적 외상(trauma)을 치유하면서, 현재 사회내부의 갈등을 관리할 뿐 아니라 나아가 미래 통일에 기여하는 아리랑이 되도록, 분파의식과 적개심을 녹이는 단결․화합의 민족의 큰 노래로 키워 나가야 할 것이다.









김기백 기자 baek43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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